보릿고개와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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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제홍 댓글 0건 조회 1,029회 작성일 20-06-12 19:26본문
보릿고개와 목화
조선의 21대 영조 대왕이 정성왕후와 사별을 한 후 후비를 간택하게 되었다. 3명의 처녀 가운데 김한구의 딸이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방석 위에 앉지를 않았다. 영조가 “왜? 방석 위에 앉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저는 우리 아버지의 딸입니다. 딸이 어찌 아버지를 깔고 앉겠습니까?”라고 대답을 하였고...
다시 왕이 질문하기를 “고개 중에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이 드는고?” 한 규슈는 “대관령 고개입니다.” 다른 규슈는 “추풍령 고개입니다”라고 하는데 김한구의 딸은 “보릿고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몰락한 양반 가문의 딸로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또 다시 왕이 질문을 하였다. “꽃 중에서 무슨 꽃이 제일인고?” 어떤 규슈는 목련, 어떤 규슈는 연꽃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김한구의 딸은 “목화꽃입니다.”라고 대답을 하고는 목화꽃은 다른 꽃과 달리 목화가 백성의 옷감이 되어 유익함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경주 김씨 김한구의 딸 김 처자는 영조대왕의 계비가 되었는데 이가 바로 정순왕후이며, 1759년 영조 35년 그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이 높아지고 불신풍조가 높아져 가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가난(보릿고개)의 실정을 바로 파악하고 국민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함과 어려움을 줄여 주려고 하는 실용적인 정책을 만들어 나가므로 모든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도행전12:22-23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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